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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08.18


일상이란게 특별한 거 없이 코로나 이후 오히려 쪼그라들고 납작해져 버렸지만 올해 새로운 도전을 한 게 있는데 바로 팟캐스트 런칭이다. 격투기 관련 방송이고 주로 UFC 와 종합 격투기 종목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동안 주짓수를 수련했고 킥복싱도 잠시 배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종합 격투기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이 종목의 팬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격투기 팬층이 매우 좁고 접할 수 있는 플랫폼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항상 콘텐츠에 목이 말라 있었는데, 그 갈증이 격투기 전문 팟캐스트의 런칭까지 이어졌다. 축구 팬들이 종종 하는 '답답해서 내가 뛴다'라는 말처럼 이번 프로젝트는 듣고 싶어 내가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행자는 격투계에 오랫동안 몸담으신 전문 기자님과 UFC에서 경기를 뛴 적이 있는 현역 선수이다. 격투 팬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들인데 한 분은 돈이 되지 않는 격투 기자를 십 몇년간 해오며 거의 유일한 격투기 전문 기자로 남았고, 다른 한 분은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 축구로 치면 프리미어 리그로 비유할 수 있는 UFC 무대를 뛰었다는 것 자체로 업계에 족적을 남겼다. 항상 이 둘이 격투기 얘기를 하면 어떨까 상상만 해왔는데 현실이 되어 눈 앞에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녹음을 하는 중간에 스스로가 놀랄 때가 있다. 제작자 이전에 이 콘텐츠의 팬으로서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사실 삼 사년 전까지만 해도 격투기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것이 사실이었다. 주짓수를 했지만 이는 격투기와는 다른 무예일 뿐, 상대를 때리고 뭉개는 데 목적이 있는 종합 격투기와는 근본이 다르다고 믿었다. 평생 한 번도 누군가와 몸을 부딪혀 싸워본 적이 없고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가 시비가 붙거나 싸움이 나려 하면 온 몸의 신경이 솟으면서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하곤 했다. 칼 보다 펜이 강하다고 믿으며 지는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처럼 두고 있는 인간으로서 사정 없이 얼굴을 때리는 격투기 경기는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믿었다. 아니 이를 원초적인 육체 활동 정도로 격하하는 것으로 내 이성의 고고함을 지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운동을 하면서 영혼과 정신이란 게 신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걸 절감하게 되었고, 정신이 육체의 일부인지 별개인지 혹은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을 쓰면서만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유동하는 듯 보이지만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이성의 틀을 깨어 흔들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신체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리가 다친 후에야 다리의 존재를 자각하고 건강을 잃은 후에야 건강을 인식할 수 있듯, 싸움이란 건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가장 극적인 긴장을 주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 안에 있는 강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것의 본질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격투기 선수는 단 한 경기에서 얼굴이 찢어져 피가 줄줄 나고 눕혀진 채 처절하게 맞는다. 극도로 응축된 폭력의 현장이지만 사실 상대와 싸우는 건 단 하루, 길어야 이십 오분이다. 경기가 잡히면 삼 개월에서 사 개월 동안 훈련을 하고 상대와 싸울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상대를 만나는 건 몇 개월 뒤의 단 몇 십분일 뿐, 그 동안 대다수의 시간을 스스로와 싸우고,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상대를 마주해야 한다. 그 싸움은 상대의 기술을 상상하는 이미지 트레이닝 훈련도 있지만 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가늠할 수 없는 존재를 그리는 공포도 있다. 마치 어린 아이의 꿈처럼, 형상이 없는 적은 어떤날은 왜소한 토끼이기도 하지만 다른 날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기도 한다. 전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마음을 다스리고 오롯이 정확한 상대의 형상을 응시하고 이를 보는 자신에 집중하는 게 진짜 격투기 훈련이다.

격투기 시합장에 가면 티비 중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격투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티비에서는 승자의 환호에 집중하고 중간중간 멋진 기술을 반복해 보여준다. 이긴 선수의 기쁜 얼굴과 감사의 인터뷰가 중계 화면에 보여지지만 현장에서는 패자의 퇴장이 눈에 더 들어온다. 시합에 진 이들은 대부분 운다. 그것도 길 잃은 어린 아이처럼 서럽게 운다. 옆에서 다독여주는 게 미안할 정도로 몸 속 가장 깊은 곳의 슬픔까지 끌어내서 눈물을 쏟는다. 내 시선은 승자 대신 그들의 퇴장 모습을 좇는다. 좌절감에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비틀대다 대기실 언저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면서 패자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아마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 테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갖힌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절망은 그 상상보다 훨씬 깊고 짙을 것이다.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의 얼굴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묘한 위로의 감정이 차오른다. 나 보다 훨씬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구나. 남을 비교하면서 얻는 안도의 위로가 아니라 더욱 순도가 높은 절망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내 안의 고통을 객관화 할 수 있게 될 때 받는 위안이다.

그리고 그 선수의 SNS를 찾는다. 대부분 비활성화를 해놓거나 반응이 없다. 패배에 대해 코멘트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그만큼 충격이 큰 것일 터. 그리고 나는 또 상상한다. 패배의 다음 날은 어떨까. 어김없이 찾아오는 햇살과 목표가 사라진 하루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상상했던 승리의 하루와는 낙차가 큰 패배의 하루를 맞는 기분에 대하여. 그럼에도 그가 그 절망을 견디고 이겨내길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는 이유는 승리나 성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한 없이 낮추고 위태롭게 하는 절망을 견디고 이겨냈을 때라고 믿는다. 그러다 다시 로드워크를 하거나 샌드백을 치는 사진이 올라오면 나도 괜히 용기가 생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절망을 견디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이 있구나. 나도 내 안의 절망을 견뎌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이 차오른다. 훌륭한 격투기 선수는 매번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다. 그 싸움에서 매번 이길 순 없겠지만 지고 나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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