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썸네일형 리스트형 240702 안희연 <단어의 집> 종종 시인들이란 고약한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특정 시인의 고약한 품행을 직접 목격했다거나 작품에서 그런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시인이 시를 써 독자들을 감화시키는 방식 자체가 조금은 고약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시는 아름다움을 언어로 드러내는 장르이고, (혹은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아름다움은 명료하기 보단 아득하고 분명하기보단 아득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시의 아름다움은 형태 있는 것들의 자태와는 달리 축축하고 어두울 때가 있다.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자꾸만 헤아리며, 기어코 의미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지만 결국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걸 뒤늦게 깨닫곤 한다. 독자들이 언어의 정원에.. 더보기 기운을 내 - 타케우치 마리야 (元気をだひて - 竹内まりや) 종종 일본 CM을 찾아보게 되는데 특히나 일본이 잘 만드는 CM이 바로 맥주 광고인 듯하다. 우리나라의 맥주 광고는 원료의 차별성을 강조하거나 마시는 순간의 표정에 집중하여 맛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편인데 일본 맥주 광고는 좀더 콘텍스트가 있다. 한국 맥주 광고가 일종의 의성어, 의태어의 강렬한 이미지 표현 같다면, 일본은 주어와 동사, 가끔 부사를 넣는 짧은 문장에 가깝다. 아마도 맥주에 대한 인식도 다를테고, 광고법이라는 조건도 (아마도) 다를테니 광고의 지향점도 다를 거라고 추측해본다. 다만, 보는 재미는 일본 맥주 광고 인데, 그 중에서도 아사히의 마루에프 생맥주 광고를 인상깊게 봤다. CM은 하루의 생업을 마친 사람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면을 모았다. 너무 늦지.. 더보기 <확률적 사고의 힘> 다부치 나오야 다부치 나오야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든 생각은 제목이 착 감긴다는 것이었다. 운율이 안정적이면서도 마지막 '힘'이라는 한 글자가 분명하게 끝을 매조진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흠 잡을 데도 없는 제목이다. 책 내용을 분명히 아우른다. 원서 제목인 '확률론적사고'와 뜻은 같지만 훨씬 사려깊게 지은 제목인 것 같다. 내용은 살면서 마주치는 판단과 선택의 순간을 '확률론'의 방식으로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확률론의 기저에는 무조건이란 게 없다는 전제가 있다. 인생에 100%는 없기 때문에 늘 선택해야 하고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하며, 후회를 최소화 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확률적 사고의 본질이다. 이론적으론 매우 쉽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수월치 않다. 우리가 내.. 더보기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팀 오브라이언의 소설 은 전쟁에 대한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쟁 그 자체를 다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을 다른 주제의 알레고리로 쓰지 않고 전쟁을 배경으로 다른 스토리를 녹이지도 않는다.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결국 소설의 핵심은 전쟁 그 자체이다. 인물 역시 개별로 존재한다기 보다 전쟁을 견디면서 성격이 드러나고, 인물의 파고는 인간이 아닌 전쟁의 심도를 드러낸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전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재로 낱낱이 해체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원치 않는데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옆에서 동료가 죽는 모습을 봐야 하며, 도대체 왜 이 곳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채 전투를 치뤄야 한다. 그들의 절망하는 대상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이다... 더보기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최인아 서점에 가면 수많은 에세이집이 놓여있다. 출판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가장 수혜를 입은 장르는 바로 에세이 분야가 아닐까싶다. 이런 상황에 볼멘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좌판에 깔린 책들을 보며 한 권의 책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손쉽게 옅볼 수 있다는 건 꽤나 유익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을 출판한다는 건 작가가 어느정도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내보인 사람이라는 것인데, 책을 읽으며 작가의 비법과 일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점이 첫번째 즐거움이고, 내가 모르는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고충과 도전을 엿볼 수 있는 기쁨이 두번째 즐거움이다. 에세이들 중에 재밌고 덜 재밌고가 나뉘는 건 내 취향의 문제일 수 있고, 혹은 구성과 문장의 탓인 경우가 있기도 하기에 책을 읽다가 흥미가 떨어지는 .. 더보기 # 230319 삼고 사저. 돌이켜본 지난 한 주간의 흐름이다. 일주일을 이루는 게 일곱날이란 게 기묘하면서도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용을 써도 딱 절반 만큼 건져낼 순 없다. 대체로 좋았거나 대체로 안좋았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주는 야심차게 한 주를 시작했지만 감기에 걸려 몸이 안좋았고 그로 인해서인지 힘도 빠졌다. 영 성에 차지 않은 한 주였다. 쑥쑥 자라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종종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하다. 손가락 한뼘만큼은 분명 자란 것처럼 키가 커 있거나 '나 삐졌어'란 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들을 만나며 했던 다짐들이 떠오르면서 조급해진다.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내가 되려는 노력 못지않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느껴질지도 .. 더보기 # 영화 4월 이야기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최고의 시점은 당연히 1월 1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수선한 연말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1월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하니 기합을 넣고 1월 1일 부터 무언가를 하려면 12월 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런 이들을 위해한 두달 뒤에 설이 있다. 그 새 마음의 재정비도 할 수 있고 목표 수정도 가능하니 어쩌면 인생이 유악한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것 마저 놓친다면... 학생에겐 3월 2일 개학식이 있다. 거기에 나는 프로야구 개막일을 하나 더 준비해둔다. 프로야구가 거의 1년 가까이 하는 스포츠이니, 야구 시즌 동안만 계획을 실천해도 꽤 성공한 한해가 된다. 일본에서는 4월이 시작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야 4월이 봄의 절정이면서 여름을 준비하는 시즌이지만, 일본에서.. 더보기 # 0%를 향하여 서이제 작가의 소설집 를 읽었다. 탈형식적인 실험 소설들이 담긴 소설집이었다. 표제작이 다루는 소재이면서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게 영상과 영화인데 개별 작품들은 일반적인 플롯과 서사의 서술이 아닌, 영상과 이미지를 편집해 붙여 놓은 듯한 특이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이미지라는 단어가 소설에 붙을 땐 묘사가 섬세하고 대상이 구체적이며 내면에서 바깥이 아닌, 외형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식의 심리 서술을 택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은데, 는 좀 다르다. 이미지를 구현함에 있어 감각적인 서사와 묘사에 천착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언어적 서술을 거부하고 프리미어 편집 툴로 영상을 잘라 붙이듯 장면의 조각들을 붙이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개별 이야기 안에서도 단락들이 분절된다. 오히려 이야기를 하나로 만..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