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서점에 가면 수많은 에세이집이 놓여있다. 출판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가장 수혜를 입은 장르는 바로 에세이 분야가 아닐까싶다. 이런 상황에 볼멘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좌판에 깔린 책들을 보며 한 권의 책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손쉽게 옅볼 수 있다는 건 꽤나 유익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을 출판한다는 건 작가가 어느정도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내보인 사람이라는 것인데, 책을 읽으며 작가의 비법과 일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점이 첫번째 즐거움이고, 내가 모르는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고충과 도전을 엿볼 수 있는 기쁨이 두번째 즐거움이다.
에세이들 중에 재밌고 덜 재밌고가 나뉘는 건 내 취향의 문제일 수 있고, 혹은 구성과 문장의 탓인 경우가 있기도 하기에 책을 읽다가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 그러려니 하면서 맘 편히 덮어버리곤 한다. 그들의 성취나 인생론을 얕보는 게 아니라 책이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하지만 재미없는 책을 만나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오만한 책을 만나는 것이다. 아주 가끔 겪는 일인데 이럴 땐 책을 맨 앞으로 돌려 굳이 작가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오만한 책, 오만한 에세이는 취향의 영역을 자신의 커리어와 전문분야의 내용과 동일시하여 담는 것들이다. 나는 이를 '성공한 중년의 함정'이라고 부르는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린 이들이 그들의 업적과 별개로 예술, 음식, 정치 등 여러 분야의 식견을 아주 진지하게 담아내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뛰어난 경영인이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내논 성과와 들인 수고는 전혀 다른 분야임에도 배우고 싶을만큼 멋지고 훌륭해보이지만, 낯선 여행지 박물관에서 감동받은 미술품 이야기나 고전 재즈 음악에 대한 애정과 식견을 그 책에서 보고 싶지 않다.우리가 보고 싶은건 직업인으로서의 헌신과 좌절을 극복한 이야기이지 취향 혹은 종종 등장하는 유년 시절에 대한 연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반대편에서 저자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독자들이 그에게 궁금해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작가는 두꺼운 유리천정을 극복하고 굴지의 대기업에 부사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직업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모두 성공한 사람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 두가지에 대해서 집중해 이야기 한다.
작가는 노동의 가치가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업무의 효율화가 강조되지만 이는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게 일하는 시간이기에 일에 끌려다는 것이 아닌 일의 주도권을 쥔 채로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의 성장이 멈추고 난 성인을 또 한번 성장시킬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하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과 일을 행하는 방식대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말단 직원에서 임원직까지 거치며 조직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한다. 본인이 실패하거나 성공했던 인간 관계의 예시들, 예를 들어 어렵기만 한 관계인 직장선배에게 위로받았던 이야기나 냉정한 선배에서 잘 들어주는 선배가 되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직장 동료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조직과 개인 둘을 쪼개고 한쪽 편을 들어주는 대신에 개인과 조직의 목표 방향을 비슷하게 만들 때 둘 모두가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한다.
다 읽은 후 느낀 건 이 책은 성공한 임원만이 쓸 수 있는 솔직한 에세이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조직 생활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이 이제 막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조언과 요구를 적어냈다. 적당한 교훈이나 뻔한 인생론으로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고, 직장이나 조직을 개인의 존엄을 말살하는 괴물로 묘사하면서 개인과 자유를 부각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당연히 심장이 이끄는 대로, 열정이 몸을 흔드는 대로 떠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 책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 딱 그것이었다. 직장에서 일 잘했던 이가 조직 안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솔직한 조언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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