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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운을 내 - 타케우치 마리야 (元気をだひて - 竹内まりや)

종종 일본 CM을 찾아보게 되는데 특히나 일본이 잘 만드는 CM이 바로 맥주 광고인 듯하다. 우리나라의 맥주 광고는 원료의 차별성을 강조하거나 마시는 순간의 표정에 집중하여 맛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편인데 일본 맥주 광고는 좀더 콘텍스트가 있다. 한국 맥주 광고가 일종의 의성어, 의태어의 강렬한 이미지 표현 같다면, 일본은 주어와 동사, 가끔 부사를 넣는 짧은 문장에 가깝다. 아마도 맥주에 대한 인식도 다를테고, 광고법이라는 조건도 (아마도) 다를테니 광고의 지향점도 다를 거라고 추측해본다. 다만, 보는 재미는 일본 맥주 광고 인데, 그 중에서도 아사히의 마루에프 생맥주 광고를 인상깊게 봤다.
CM은 하루의 생업을 마친 사람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면을 모았다. 너무 늦지 않은, 노을 진 저녁 배경이 대부분이고 식당의 사장이 맥주를 건내며 다정하게 웃는 게 공통적인 구성이다. 마지막에 여자 배우가 <일본의 여러분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을 웃으며 건넨다. 수고했다는 '오츠카레사마'와 생맥주의 '나마비루'를 섞어 '오츠카레나마데스'라는 언어유희로 마무리한다.
CM은 기획의도대로 포근하고 나긋나긋한데, 이를 더해주는 게 배경음악이다. 모든 마루에프 광고에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기운을 내>가 흘러나온다. 미디움 템포의 심플한 구성에 한 번 들으면 금방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멜로디도 단순하다.
이 노래는 타케우치 마리야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1984년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처음 불렀고 1987년에 자신이 리메이크했다. 실연을 당한 여자에게 동성의 친구가 위로와 응원을 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실제로 타케우치 마리야의 친구이자 가수인 칼리 사이먼이 남편과 이혼한 후 실의에 빠지자 위로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사는 대충 이렇다.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 번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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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같은건 보이지 않는 강인한 네가 / 그렇게 슬프게 만든 사람은 누구야?
이 끝나버린 사랑에 /매달리는 건 이제 그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내일을 찾는 건 간단한 일이야 / 조금은 여윈 그 몸에 
어울리는 옷을 찾고 / 거리로 뛰쳐 나간다면, 봐바
모두 너를 돌아보잖아 / 기회는 몇번이든
찾아오는 법 / 남자는 그 사람만이 아니란 걸 깨닫고
너의 작은 실수는 / 언젠가 추억이 될거야
어른이 되는 계단에 한걸음 오른 거지
인생은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나쁘지 않아
어서 빨리 힘을 내. 웃는 얼굴을 보여줘

단순하고 쉬운 가사다. 쉽다는 건 감정이 솔직하고 표현과 속내가 일치한다는 뜻일게다. 솔직하다는 게 모든 때에 미덕을 발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할 때는 위로의 순간일 것이다. 내가 너를 걱정하고 있어, 네가 힘 내길 바라. 이 마음은 메타포를 동원할 필요도 없고, 표현의 적나라함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언어가 최단경로로, 상대의  마음에 빨리 가닿기를 바라기만 하면 된다.
노래는 이런류의 가사가 빠지기 쉬운 통속성의 함정을 유리 다리 건너듯 우아하게 지나친다. 실연을 하지 않은 이들도 대책없이 위로를 얻는다. 그들에겐 힘겹게 떠나 보낸 이가 연인이 아니라 힘들었던 한해, 괴로웠던 관계, 늦은밤 찾아오는 불안함 같은 것ㄹ 수 있다. 각자의 사연에 마음이 마르고 굳어버린 이들에게  <어서 빨리 힘을 내 / 웃는 얼굴을 보여줘>라고 말하는 따뜻한 목소리는 큰 위로를 남긴다.
2024년 새해가 찾아오면서 내내 귀에 꽂고 들었던 노래이다. 이 노래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고 솔직하게 한 해를 살아보자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