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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08.01

영화 <미나리>를 다시 보았다. 처음 봤을 때도 너무 좋았지만 다시 보니 새로 곱씹을 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재밌게 본 영화지만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영화가 있는 반면 이 영화는 시간과 함께 종종 꺼내볼만한 작품인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분히 종교적이다. 광인으로 묘사되는 폴은 시도 때도 없이 방언을 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뜻을 물으며 악귀를 좇는다. 주일에는 십자가를 직접 몸에 들쳐매고 고난의 길을 좇는다. 다소 과격하고 근본주의적인 폴의 종교 행위는 신이란 메타포를 영화 속에 실재하도록 존재하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마치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짐 케이시가 'J.C',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이자 소설 속 실재로 존재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하찮고 납득하기 어려운, 그러면서도 제이콥 가족의 근처에 머물던 존재가 폴이었다. 폴은 끊임없이 제이콥을 간질이며 신의 존재를 일깨우지만 제이콥은 듣지 못하거나 애써 거부하고야 만다.

제이콥의 아들 데이빗은 심장이 약해 격한 움직임을 피해야 한다.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하는 데이빗은 또래에 비해 너무도 일찍 죽음이란 것을 인식해버렸다. 안쓰러운 자신의 이 어린양을 두고 제이콥은 시험에 든다. 데이빗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병원에서 제이콥은 자신이 기른 농작물들을 차마 차에 두지 못하고 품에 안은 채 병원에 들고 온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던 대기실에서 아내 모니카는 데이빗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나자고 한다. 이에 제이콥은 답한다. ‘난 다 잃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시작한 걸 끝내야겠어.’

이어진 장면에서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심장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데이빗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모든 것은 바라던 데로 이뤄졌고 가족의 기도가 현실이 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험에 들었던 자가 있으니 바로 제이콥이다. 남편에게 실망한 모니카는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바라던 것을 이루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제이콥은 결국 아브라함의 길이 아닌 이민 1세대의 억센 아버지의 길을 택했고, 가족을 잃는 듯 했지만 신은 그를 외면하지만은 않는다. 그의 모든 것이 담긴 농작물들이 창고 채로 불타 전부 사라졌을 때 결국 그의 가족은 한 곳에 모인다. 손에 가득 쥐던 것을 놓고나서야 비로소 무언갈 새로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가 신이라는 존재의 자장 안에서 작동한다고 할 때 이 세계에서 도드라지게 배회하고 겉도는 이가 있다면 바로 제이콥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모니카와 달리, 그가 뱉은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아빠의 성취를 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좇는다. 결국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고 싶은 사람은 제이콥이었다. 그는 신의 세계에 튕겨나온 실존하는 인간이고 영화 속에선 그가 휘둘리며 휘청거릴 때마다 반대로 신의 존재가 영화 속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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