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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01.03

이번주엔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읽었다.  대학시절 처음 읽었을 땐 구성이 난해하고 편집증적인 묘사가 거슬려 억지로 꾸역꾸역 읽어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난해한 구성이 흥미롭고 신선했고 묘사는 감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예전엔 시큰둥했던 주인공의 인물형이 지금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가 되가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작가와 작품, 작품과 세계, 세계와 독자라는 삼면에 새겨진 양단의 두 점들을 이리저리 뛰넘으며 서로 점을 잇고 그 흔적을 남기는데, 흔적으로 남은 기괴한 모양이 종국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마치 작품 속에서 교수가 자신의 발로 남겨놓은 문장처럼 말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공감하겠지)

 

이 책을 읽으며 독서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독서란 건 초대된 집에 놓여진 멋진 가구의 조립 설명서를 그리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 설명서를 보고 가구를 조립하는 게 아니라 조립된 가구를 보고 설명서를 그려보는 것이다. 가구의 미형이 단순하고 수수할지라도 어떤 설명서는 볼트 너트 하나하나테 페이지를 할애해 책 한권을 쓰기도 할거고, 어떤 설명서는 복잡한 가구도 하나의 그림으로 모든 과정을 설명해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된 설명서를 쓸 자신이 없어 본페이지가 들어가기 전부터 나무 종류와 특징, 브랜드의 역사에 대해서만 줄줄 읊어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눈 앞의 가구' 따위엔 관심도 없이 자신이 머릿속에 있는 새로운 가구 설명서를 그리기도 할 것이다.(그대로 직접 만들면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설명서 따위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굳이 피곤하게 독서란 걸 할 필요가 있나. 이젠 독서란 게 난이도가 있는 장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어렵고 수준이 높다기 보단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행위라는 점에서.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번거롭고 수고스러움을 견딘다는게 어려운 일이기에 수준이 높은 작업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좋은 작품은 작품 바깥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고 감상하는 데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현실 사이를 왕래하다가 그 사이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교묘한 미로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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